삶에 대한 이해


9. 부자가 되기 위한 의지의 사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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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부자가 되기 위한 의지의 사용법 1


과학적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첫걸음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외의 어떤 것에도 의지력을 적용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이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정신적 힘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은 육체적으로 억압하는 것만큼 극악무도한 짓이다. 물리적 힘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면 정신적 수단으로 그들을 억압하는 것 역시 똑같은 결과를 만든다. 차이가 있다면 방법뿐이다. 물리적 힘으로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 강탈이라면 정신적 힘으로 물건을 빼앗는 것 역시 강탈이다. 원칙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부자가 되는 법은 다른 누구에게도 어떤 식으로도 힘이나 권력을 적용시키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성이 조금도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지력의 사용은 자신의 목적이 좌절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타인을 위한 사물이 자신에게 오기를 바라며 의를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신을 지배하려는 시도이고 불손할 뿐 아니라 어리석고 쓸모없는 일이다.


 좋은 것을 달라고 신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의지력을 사용해 불경스러움을 누른다든지 고집스럽고 반항적인 힘을 굴복시킬 필요도 없다.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해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물질은 우호적일 뿐 아니라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 이상을 주려고 안달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력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았다면, 자기 자신에게 국한된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의지력을 사용해야한다. 그것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의지의 합법적인 사용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국한된 의지력으로 특정 법칙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라.


 의지, 사고, 마음이 자신을 벗어나 다른 사물이나 사람에게 향하지 않도록 하라. 자신의 마음을 집안에 두어야 한다. 집안에 있을 때 가장 많은 성과를 발휘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의 영상을 마음 속에 정하고 신념과 목적의식을 갖고 그것을 지킨다. 마음이 옳은 길로 향하도록 의지력을 사용한다.


 신념과 목적의식이 견고하고 지속적일수록 부자가 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무형 물질 위에 긍정적인 모양만을 찍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각인으로 긍정적 모양의 효과를 감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무형물질은 우리의 욕망을 담은 그림을 받아들여 먼거리로 어쩌면 전 우주로 보낸다.


 이 각인이 넓게 퍼지면서 실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물, 무생물,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사물까지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모두 동요한다. 모든 힘이 그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여러 곳에 퍼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형 물질에 부정적인 각인을 찍으면 이 모든 것들이 저지 될 수도 있다. 신념과 목적의식이 우리를 향한 움직임을 시작하게 하는 힘만큼 의심이나 불신은 그것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부자가 되기 위한 정신과학의 사용을 시도하는 데에 있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의심과 두려움의 눈길을 보내는 매 순간마다 걱정으로 보내는 매 시간마다 불신에 사로잡혀 있는 그 시간마다 지능을 가진 물질의 전 영역을 통해 흐름이 빠져나간다.


 “믿는 자들에게만 약속이 이루어지라라”


 예수는 그와 같이 말하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중요성이 그토록 큰 만큼 생각을 단단히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믿음은 관찰하고 생각한 사물들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므로 주의의 집중을 요한다. 의지라는 수단에 의해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결정하게 되므로 바로 이곳에서 의지의 효용성이 나오게 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가난을 연구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되는 것을 사고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질병을 연구하고 질병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건강이 얻어지지 않는다. 죄를 연구하고 죄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정의가 바로서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난을 연구하고 사고함으로써 부자가 되는 사람은 여태 없었다.


 병리학으로서의 의학은 질병을 증가시켰다. 원죄학으로서의 종교는 죄악을 자극했다. 빈곤을 연구하는 경제학은 세상을 비참하고 열악한 곳으로 만들었다.


 가난에 대해 말하지 말라. 가난을 연구하지고 말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도 말라. 그 원인 무엇일지 고민하지도 말라. 당신은 그것과 아무 연관이 없다.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것의 치료다.

 자선봉사 들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 모든 자선은 뿌리뽑고자 하는 비참함을 지속시켜 줄 뿐이다.


 도움의 요청에 귀를 막는 무자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난을 박멸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난을 뒤로하라. 가난과 관련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목적을 성취하라.


 가난의 그림을 마음 속에 채우고 있으면 부자가 되는 데에 필수적인 정신적 영상을 지키기 힘들다. 빈민촌의 열악함이나 아동 노동력 착취 등의 책이나 글을 읽지 말라. 빈곤함과 고통의 어두운 영상으로 마음을 채우는 그 어떤 것도 읽지 말라.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빈곤의 박멸과 상관관계를 지닌 것은 아니다.


 비참함의 영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기를 거절한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불행 속에 버려두는 것은 아니다. 빈곤은 빈곤에 대해 연구하는 선한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신념과 목적의식으로 부자가 되는 수가 증가함으로써 해결된다.


 가난은 자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영감이 필요하다. 자선은 그들을 비참함에서 구해주는 일 없이 빵 한 조각을 주거나 한두 시간 동안 자신의 처지를 잊도록 여흥을 줄 뿐이다. 그러나 영감은 그들이 비참함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도록 만들어준다. 가난한 자를 돕고 최선의 방법이다.


 이 세상에서 빈곤이 자취를 감추는 유일한 길은 이 책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이 책은 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에 의해서 부자가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경쟁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를 발로 차서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창조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수 천명을 위한 길을 열어주고 그들에게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가난을 동정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말이나 생각을 하지 않고, 그것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냉정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의지력을 사용해 가난을 마음 속에서 털어내고 당신이 원하는 것의 영상을 신념과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마음 속에 고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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