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연분


사랑에 관하여 (관계의 관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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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관하여 (관계의 관점을 중심으로)


모든 관계란 항상 힘겨운 과제이기 마련이다. 관계는 늘 우리 자신의 고귀한 측면들과 숭고한 전망들과, 그리고 우리자신에 대한 훨씬 더 장대한 시각들을 창조하고, 표현하고 체험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보다 더 즉각적이고, 더 강력하고 더 완벽하게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전혀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우주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까지도, 오직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장소들과, 다른 사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라는 존재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축복하자. 모든 관계를 특별한 것으로 자신을 형성해 주는 것으로 보도록 하자. 그리고 나서 이제 어떤 존재가 될 지 선택하도록 하자.


<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사랑 >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인간관계를 살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관계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보다는 관계에서 무엇을 얻어 낼 수 있는가란 시각으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관계를 맺는 목적을 우리가 차지하고, 소유하는 것이 상대방의 어떤 부분인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드러내고자"하는 것이 자신의 어떤 부분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즉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 줄 타인을 갖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완전함을 함께 나눌 타인을 갖는데 있다.  

관계는 가장 고귀한 자아개념을 체험할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것이다.


관계를 타인들에 대한, 우리의 가장 고귀한 개념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로 볼 때, 그 관계는 실패로 돌아간다. 


관계 당사자들은 상대방에 대해 일체 마음쓰지 마라. 오로지 단 한 가지, 자신에 대해서만 마음쓰도록 하자.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상대방에게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관계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유이다. 가장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남에 대한 사랑을 매개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자기네가 이렇게 하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의식하면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잠재의식이라 부르는 것에서 진행되는 흐름이다. 우리들은 생각한다. "내가 남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들도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나를 사랑할 수도 있으리라"


이것의 반대 생각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병이다. 


 이들의 첫째 특징은 상대방을 믿지 않는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상대방에게 그 사랑을 증명하도록 만드는 작전을 펼친다. 상대방들은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둘째 특징은 마침내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이내 그 사랑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대방의 사랑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행동양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문자 그대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다. 그들은 자신을 찾고자 관계를 맺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잃고 말게 된다. 관계 속에서의 이 같은 자아상실이야말로 남녀관계에서 생기는 괴로움의 주요한 원인이다. 두 사람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는 더 크리라는 기대를 품고 함께 짝을 이루지만, 오히려 더 못하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 혼자일 때보다 더 무력하고, 더 맥빠지고, 더 따분하고, 더 짜증스럽고 더 불만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관계의 목적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진화라는 목적을 위해 몸에 깃 들고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결정하기 위해서 모든 관계를 활용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목적이고, 자신을 창조하는 즐거움이고, 자신을 인식하는 즐거움이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일궈가는 즐거움이다. 이것이 자의식을 갖는다고 할 때의 참 뜻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의 개인적 관계들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관계들은 성스런 터전이다. 그럼에도 그 관계들은 사실 상대방들 즉 타인들과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관계 자체 속에 이미 타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타인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


그러므로 우리의 맨 처음 관계는 먼저 자신을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 다른 사람을 축복받는 존재로 여기려면, 먼저 자신을 축복받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다른 사람의 성스러움을 인정하려면, 먼저 자신이 성스러운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선각자들도 "나는 너희보다 더 성스럽다"가 아니라. "너희도 나 만큼 성스럽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에 왔다.   


 아직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남들의 모습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받고 고통받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 때는 자신이 정확히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자신과 남들에게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하기를 두려워한다. 


자신이 "좋지 않게 비치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런 식으로 느끼는 게" 십중팔구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럴 때 우리를 상처받는 상황에서 치유되는 상황으로 가장 완벽히, 가장 빨리, 데려다 주는 것은 완벽한 정직이다. 즉 어떤 것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기꺼이 보여 주고, 인정하고 밝히고 선언하는 것, 진실을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완전하게.  


자기 진실에 따라 살아라 유연하게 그러나 완전하고 일관되게 그리고 체험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면 쉽고, 빠르게 자신의 진실을 바꾸도록 하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 관계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게 아니라,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판단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유를 가지고 관계를 맺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공허감을 채우고, 사랑하거나 사랑받기 위해서, 이런 이유들은 괜찮은 편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기심을 충족시키고,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성생활을 충족시키고, 과거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관계를 맺는다. 이런 이유들 중 어떤 것도 바라던 걸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관계 자체도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관계는 둘 다가 그 목적이 의무가 아니다. 기회를 창조하는 것, 즉 성장할 기회, 자기 표현을 충분히 할 기회, 자신의 삶을 그 최고 잠재력으로까지 끌어올릴 기회, 자신에 대해 지금껏 지녀왔던 모든 잘못된 생각과 열등한 관념들을 치유할 기회, 두 영혼의 교류를 매개로 신과 궁극적으로 재결합할 기회를 창조하는 것임을 의식적으로 동의한다면, 그 관계는 박자가 잘 맞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할 것이며, 대단히 순조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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