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문화와 좋은 문화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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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문화와 좋은 문화의 차이
잘못된 문화는 남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일이다.
좋은 문화는 남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집중하는 일이다.
잘못된 문화는 남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자신의 정당성을 위로 받으면서
자신의 정당함을 인정받으려는 마음이다.
좋은 문화는 자신의 가야할 길에 집중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온힘을 다하는 일이다.
사람이 본질로 환원하여 근원으로 돌아갈 때 주변의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잊고 근원이 단절되면 주변에 어지러움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근원이 끊어진 데서 주변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잘못된 문화는 내 주변 사람들이 왜 나에게 그릇된 행동을 보이는지 그 까닭을 모르는 것이다.
내 주변의 어지러움이 나에게 자주 나타나는 것은 왜 그러한가?
경찰서장 앞에서는 아무도 흐트러지지 않으나
소인 앞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대하고 흐트러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교직자와 성직자와 지도자와 공부자는 반드시 격을 높여야 한다.
격이란 기운이며 운이고 기의 상태를 말한다.
공부자에게 공부가 없으면 주변에 소인이 모여들 거니와 소인이 난동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인데
이는 나의 공부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경찰서장은 위엄과 도덕과 징벌을 달고 살아가기에
아무리 소인이라도 그 앞에서 어지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서장의 격이면 누구도 내 앞에서 악을 행할 수 없을 것이지만
내가 소인의 격이면 내 앞에서 소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악행을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문화는 나의 마음을 올바르게 하면서 근원을 통하는데 있다.
그것은 홀로 깊이 공부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공부자는 공부의 정도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부자가 공부가 없으면 공부 없음을 속일 수 없다.
주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나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공부자는 공부한 것으로 승부를 낸다.
내가 올바르게 정신을 통일하고 종일토록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면
내 앞에 소인들이 모여들어 난동을 부리는 법이 없다.
공부자 중에 의식상승에게 말하기는 주변이 늘 난동을 부린다고 하는데
그들은 그들의 공부부족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항상 상대의 잘 못된 것을 내세운다.
진실로 그러한가?
참공부는 힘이 들지만 공부를 잘하면 사람들이 내 앞에서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이 공부를 잘 못하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고
하대하며 악행을 저지름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공부자에게 공부부족은 곧 죽음과 같은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소인들이 내 앞에서 난동을 부리지 못하나
공부가 얕으면 소인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게 된다.
포원이라는 것은 내가 해야 할일에 내 모든 것을 다 걸어 보는 것이다.
공부자에게 포원이란 공부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것이다.
공부자가 포원을 하면 공부를 하지 않고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자는 반드시 포원이 있어야 하는데
소인에게는 포원이 없다.
소인은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급급하니 포원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소인으로서는 공부가 불가능하다.
공부에 대하여 포원하는 정도가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말한다.
세상에 소인이 공부하는 법은 없다.
소인이 하는 공부는 방탕과 번롱과 어지러움과 소인들의 난동을 보는 일이다.
성인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모든 것을 다 걸지만 소인은 허망한 일에 삶을 허비한다.
성인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모든 시간을 다 쓰지만 소인은 허망한 일에 모든 시간을 허비한다.
성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지만
소인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망각하고 허망한 일에 온힘을 다한다.
소인은 자신이 해야 할일에 시간을 쓰지 않고 방탕한 일에 모든 시간을 다 쓴다.
잘된 문화는 남의 본보기가 되는 일이다.
공부자가 남의 본보기가 되려면 목욕재계하고 종일토록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소인은 개인사로 하루 종일 시간을 소비하면서 허망한 삶을 살아간다.
공부하는 자는 내 한 몸을 희생하여 나라와 백성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붙는다.
소인이라는 것은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을 자신의 이득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한 까닭에 소인의 길은 매우 위태로우며 죽음을 달고 살아간다.
대인은 천신이 보호하므로 안정됨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
대인은 운이 있고 복이 있고 살리는 기운이 있다.
소인은 운이 없고 복이 없으며 늘 죽는 기운을 몰고 다닌다.
소인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그러므로 공부자가 소인의 길을 걸어가면 사고와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 날 것이다.
소인의 마음은 제 한 몸만 생각하는 마음이다.
대인의 마음은 전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다.
소인은 늘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나 대인은 자신의 할일을 할 뿐 자기정당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소인은 끊임없이 자기의 일로 분주하고 대인은 나라와 백성의 일로 분주하다.
일평생 개인사를 접고 인류를 위해서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기도만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공부자가 이렇게 공부를 하면 천지신명이 늘 보호를 한다.
대인은 하루 종일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기도와 염원이 멈추지 않는다.
소인들은 욕망과 잡념과 사심으로 인생을 허비한다.
대인의 마음에는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덕이 있으므로 마음이 맑고 고요하다.
소인의 마음에 광증이 있기 때문에 자주 미쳐서 날뛰는 것은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인의 마음은 자신에 대해서는 정당성과 자만심과 교만한 마음이고
타인에 대해서는 훈계와 꾸짖음으로 분노한다.
소인들은 항상 명분을 앞세우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대인의 마음에는 천신이 통하는데 그 이유는 평생토록 인류를 위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소인의 마음에는 잡신이 통하는데 그 이유는 하루의 대부분을 개인을 위한 마음으로 사사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소인의 주변에는 소인이 모여 들어 생각을 번롱케 하며 길이 어긋나서 하는 일마다 망하게 한다.
대인의 주변에는 군자가 모여 들고 거룩한 생각과 거룩한 마음으로 도리를 다하므로 하는 일마다 성공하게 한다.
소인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개인사로 분주하되 이루는 일이 없다.
대인의 일 년 삼백육십오일 동안 전전긍긍하며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므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
나라와 백성이 망하는 것은 위정자가 종일토록 개인사를 추구하기 때문이며
나라가 흥하고 백성이 편안한 것은 위정자가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종일토록 마음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마음이라 한다. 공부자의 마음이 한마음이므로 나라와 백성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전전긍긍이라고 하는 것은 공부자가 하루의 시간을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을 말하다.
소인에게는 혹이 하나씩 있어서 그 혹을 위안 삼아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 한다.
혹이 있어야만 게으름과 나태함을 정당화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하늘이 사람을 쓸 때는 편안하고 행복한 곳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하여 비참한 참상 속에 넣어 두는 까닭이다.
소인은 하루 종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며 자신을 위하는 길만 걸어간다.
대인은 하루 종일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여 자신의 개인사를 뒤로 하고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을 걸어간다.
소인의 길은 가기 쉬우나 일생을 허비하므로 거두는 것이 없다.
대인의 길은 가기 어렵지만 일생도록 공부하여 대업을 거두게 된다.
소인들은 늘 남의 잘못을 앞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소인들은 늘 자신의 혹을 앞세워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정당화 한다.
대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모든 것을 다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러므로 대인에게는 혹이 없다.
대인은 혹이 없기 때문에 적은 시간을 자고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대인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모든 시간을 다 쓴다.
소인을 가까이 하면 소인을 닮아갈 것이고 대인을 가까이 하면 대인을 닮아갈 것이다.
본시 사람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삶이란 것이 매우 허망한 것이다.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공부자에게 삶이란 인간완성의 길을 열어가기 위한 것이다.
공부하여 인간이 완성되면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된다.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소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에 사람으로 오는 것은 공부하기 위함이요.
공부를 잘하면 대인이 되고 공부하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
소인으로 살 때는 고통이 산과 바다와 같다.
대인으로 살 때는 즐거움이 산과 바다와 같은 것이다.
공부자가 공부를 하는 것은 대인의 길을 가기 위함이다.
사람이 공부를 해둔 것이 없으면 꺼내 쓸게 없을 것이며
공부를 해 둔 게 있으면 언제든 내어 쓸 수 있을 것이다.
병중에 가장 큰 병은 공부부족이다.
사람이 무능하다는 것은 공부를 해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공부가 없으면서도 공부를 했다고 착각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교만이라 한다.
공부한 것이 없게 되면 때에 당착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찍이 주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이루는 일이 없고 허망함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교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순간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늙음은 금방 오는 것이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촌각이라도 아껴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공부자는 공부하는 사람이요.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다.
공부자는 나라와 백성을 돌보는 사람인데
간혹,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소인의 길을 가다가 비참하게 죽는다고 했다.
지금은 공부해야 할 때이며
공부하지 않으면 결코 새시대의 주인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