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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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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어려움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서 어떤 관계가 생겨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사람은 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서 사람은 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 관계란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관계를 잉태하기 전에 사람은 먼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인간관계를 잉태하기 전에 사람은 먼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어른이 되어야 관계의 미숙을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이란 스스로 홀로 선다는 뜻이다.
올바른 관계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관계야 말로 적절한 관계일 것이다.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관계야 말로 적절한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서로에게 행복을 주기보다는 고통을 주는 관계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속에 시달려본 모든 사람들은 이 관계의 어려움을 날마다 겪고 있다.
물론, 원인이야 항상 나에게 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자각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것을 알고 있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고통이 있지 내가 없는데 고통이 있을 턱이 있는가?
그러니
덕이 아니면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좋다.
옛사람들은 내가 늘 덕으로 처사했다 해도 원망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던가.
그만큼 어렵고 힘겨운 것이 사람간의 관계라 할 것이다.
그러니 진실로 덕이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없거든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
이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자.
사람들을 만나되 잘 대할 자신이 없거든 만나지 말자.
그 대신 나를 관찰하고 탐구해 보자.
홀로서기라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사람간의 관계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가까이 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상대에게 잘해줄 용의가 없거든 애시 당초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최상책이다.
왜냐면,
그만큼 세상 사람들이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고 시기질투하면서 중상모략하기를 좋아한다.
선한 사람이라도 제삼자에게 다른사람에 대한 말을 하면 그것이 본의가 아니라도 탓이 되고 실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하시라도 제삼자에게 남의 이야기를 논하지 말자.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은 없다.
언젠가는 내가 남에게 했던 말이 돌고 돌아 상대에게 들어갈 것이 당연지사다.
언젠가는 내가 남에게 했던 말이 돌고 돌아 상대에게 들어갈 것이 당연지사다.
이 때문에
어찌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오해와 원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오해와 원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때 사람들은 진한 고뇌를 하게 된다.
인간이란 것이 눈이 귀가 밖으로 나있음으로 인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기가 너무 어렵고 오직 남의 허물과 시시비비을 보고 논하면서 그런 기운에 쌓여서 살아가기 쉽상이다.
사람은 특히 어려서 철없는 날에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것이 언젠가는 알곡이 되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 세상사이다.
세월이 흘러 깨달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삶이었던가를 알게 된다.
이것은 어른이라도 정신이 미성숙하면 인간관계에서 많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모두 인간관계의 부조화에서 시작된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모두 인간관계의 부조화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게를 개선하려면 깊은 이해와 자각이 필요하다.
홀로서기란 스스로 갈 길을 잘 가는 것이다.
스스로 끊임없는 되돌아봄과 살핌을 통해 미약하나마 스스로 잘못을 줄일 수 있다.
본래 이 세상에 잘못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항상 적절하다.
그러나 항상 나의 언어 행동에는 결과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결과적으로 열매를 맺는다.
잘못이란 말은 모두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나의 언어 행동에는 결과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결과적으로 열매를 맺는다.
잘못이란 말은 모두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판단이란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길이다.
모든 판단은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판단은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
이제 판단은 내려 놓아야 한다.
결국은 잘잘못에 대한 시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잘잘못에 대한 시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확장하여 가슴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젊다는 것은 혈기가 충동되기 쉽다.
젊다는 것은 혈기가 충동되기 쉽다.
감정에 쌓여 일을 많이 만들어 낸다.
그것이 지금 관계에서 고통의 열매를 맺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삼분의 일이 서로 반목하고 쟁투한다.
그만큼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면 탁하고 낡은 기운에 휩싸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다.
몸에 흐르고 있는 더러운 피를 반드시 정화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도를 해야 한다.
수도란 더럽고 탁한 피를 정화하는 것이다.
내가 맑아지고 깨끗해지면 거기 시시비비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상대에게 잘해 줄 수 없거든 차라리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한다.
이것을 무조건적인 사랑 이라고 한다.
근원의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사람이 근원의 사랑에 도달하기 전에 하는 인간적인 사랑은 언제나 후유증이 있다.
그것은 서로 간에 “바램”으로 인해서 발생한다.
관계에서 서로 간에 바램은 항상 처절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설령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조건이 붙어 있는 사랑을 바탕으로한 인간관계는 늘 불안한 상태이다.
이제 그것은 스스로 살아서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그것이 반복되면 마치 화약고와 같이 주기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면 마치 화약고와 같이 주기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서로간에 바램은 원망의 화신이다.
바램이란 본래 헌신작만도 못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늘 어떤 바램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어떤 바램이든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원망을 동반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
오직 홀로선자만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홀로 서야만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