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상승의 길

고단한 삶을 변화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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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을 변화하는 길
 
안녕하세요. 의식상승입니다.
어쩌면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편안히 산다고 하지만 대개 인류의 삶이 매우 고단합니다.
편안함이란 것도 알고 보면 고도의 기술입니다.
즉, 고난을 극복하고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적 인간의 삶이란 너무나 힘들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삶이 편안하다. 또는 심신이 안정되었다는 것은 아무나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는 뜻이고 삶을 다룰 줄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복을 이루고자 한다면 먼저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삶에 왜곡된 부분이 나타나는 것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서 살아갈 때 그렇게 됩니다.
때문에 사물을 관하되 올바른 관점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일테면 돈에 대한 이해 같은 것들인데요.
돈은 많아야만 좋다. 돈이 나쁘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 돈은 얻기 어렵다.
와 같은 관념적 생각 에 대한 것들의 관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사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면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달라 집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삶에 나타나는 사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앞에 나타는 사물에 대하여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잘 다스리는 경지를 수립하지 못하면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에게 심하게 휘둘릴 수도 있습니다.
 
의식상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을 자유롭게 다루는 기술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가지고온 운명이란 것이 있습니다.
운명이 좋으면 삶이 순탄하겠으나 운명이 안 좋으면 매사에 삶이 고단합니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가게 되는데요.
 
보편적 대중의 삶에서 운명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타고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일은 대중적인 의식만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평상시에 꾸준히 해나간다면
서서히 삶이 개선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힘! 그것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그럼 어찌 해야만 삶을 좀 더 쉽게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까요?
바로 여기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아래와 같은 것에 대해 노력을 한다면 어떤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3가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1. 명상을 자주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2. 독서를 자주해도 바뀝니다.
3. 덕을 많이 쌓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사색과 독서와 공덕 이 세 가지는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기틀이 됩니다.
그리고  세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남모르게 음덕을 쌓는 일입니다.
덕은 곧 원천적인 힘이 됩니다.
위 세가지는 길이 들어야 잘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자면 이것을 자주자주 해야기만 길이 나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보면
가끔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데요.
그것이 바로 사람마다 풀어야할 각자의 숙제입니다.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보통의 사람은 정확히 꿰뚫어 볼 수가 없습니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색과 명상을 통에 삶을 관조 하면 길이 열리게 됩니다.
깊은 사색을 통해서 삶을 통찰하는 것인데요. 
명상이나 사색을 자주하게 되면 이치가 밝아지므로 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의 원인 알 수 있고 거기에 적절한 해법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
 
사람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정확히 바라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이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앞에 나타는 사물에 대하여 그것이 왜 그러한가를 깨닫는 것 입니다.
왜 그러한가?
이 질문이 곧 사물에 대한 이해를 얻게 하는 질문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이 많이 있는 것은 아직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사색이나 명상입니다.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왜 그러한지를 알고자 한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왜 그러한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힘 입니다.
자신의 삶을 정확히 꿰뚫어 본다는 것은 이미 삶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자기의 삶을 이해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자신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 것인데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메시지를 간파하면 나타나는 현상의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자신이 정말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내가 죽을만큼 싫어하는 일이 발생된다면
그것이 싫은가 좋은가의 문제가 주제가 아닙니다.
왜 나의 삶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사색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같은 일을 고질적으로 반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것이 삶을 매우 고단하게 하는 일들이죠.
왜 나는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가?
네 그것은 아직 그것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됩니다.
반복되는 일에 대해서 그것이 왜 그러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 그것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습니다.
반복은 아직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반복될까?
이것은 무엇을 깨달으라고 주어지는 일일까?
이 과제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것을 궁리 해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힘들고 고난스러운 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일 등등
사람은 왜 이런 일을 겪는 것일까요?
내가 왜 그런 일을 겪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요.
내가 싫어하는데 내 곁에서 일어나죠.
원치 않는데도 나타나는 것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
그런데 거기에는 항상 어떤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항상 어떤 일을 겪을 때는 우연히 재수가 없어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속에 보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속에 주어지는 모든 일이 선물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삶에 주어지는 일들을 선물로 보아야 하고
그 선물 속에 담겨 있는 보석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것을 찾아 내지 못하면
삶이란 것이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사물에 대하여 나타는 현상에 대하여 그 속에 담긴
매사에 보석을 찾아내는 일 그것은 곧 삶에 대한 변형의 기술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는 것들 그것이 안 좋은 일일 지라도
그것을 좋은 것으로 변형시켜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안 좋은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삶을 마음대로 다루는 삶의 마술사입니다.
이렇게 삶에 대하여 안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변형 시킬 때 그것을 "역전환"이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매사에 매 순간마다 삶을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사물을 접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축복과 선물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좋습니다.
삶이란 내가 선언한데로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늘 사물에 대하여 선언을 잘 해야만 합니다.
사물을 대하여 불안하고 근심 걱정하여 부정적인 것으로 선언을 하면 그렇게 작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물을 바라보는 힘 사물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선언하는 것
그리하여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볼 때 사물을 볼 때는 사물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심안을 열어서 정확하게 사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물의 본질에는 사실은 좋은 것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찾지 못해도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먄 여러분에게 사물이 좋게 작동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오해와 두려움과 근심걱정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축복과 감사로 전환 시켜서 바라보세요.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온 모든 것을 감사와 축복으로 전환 시킬줄 알아야 합니다. 
사물에 대하여 축복과 감사로 전환시키는 기술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입니다.
사물이란 것은 내가 바라보는 데로 보이기 때문에 사물을 볼 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정말 내가 치를떨만큼 싫은 일이 발생했을 때도 그것을 역전환 시키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대하는 깊은 사려입니다.
쓰레기를 금으로 만드는 기술,
칼을 꽃으로 만드는 기술,
화를 복으로 만드는 기술 같은 것들입니다.
삶을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
삶은 거대한 맹수가 되어
당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무섭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가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순한 양으로 변형합니다.
이 세상의 사물이란 것은 내가 보는 데로 보이는 것이 사물의 법칙입니다.
이것이 양자물리학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황폐한 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가슴이 무한한 축복의 땅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가슴에 거대한 사랑이 빛나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가슴을 활성화하여 빛이 되게 하고 사랑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들은 모두 나의 삶입니다.
그것이 발생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필연입니다.
그것이 재앙일지라도 그것을 반드시 좋은 것으로 전환시켜야만 합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는 전생과 현생과 가족과 조상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로서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연은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심은대로 뿌린대로 생각한데로 마음먹으로 대로 지금의 현실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삶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담긴 의미는 무한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축복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싫은 것이라 해도 여러분은 그것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축복의 선물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삶에 대한 이해이고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삶을 축복으로 변형하는 기술입니다
세상사는 단 하나도 우연히 없습니다.
그것이 모두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행위에 대한 결과 입니다.
그것은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지금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시작된 퇴고적 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삶이란 수만번의 환생을 통해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 현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이 자주 반복될 때는 반드시 자신의 삶을 분석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의 원인이 절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실은 다 나에게 원인이 있다는 점입니다.
만사가 다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외부에 나타난 현상만을 보기 때문에 마치 그 일이 다른 데서 시작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이 대중들의 보편적인 육안의 눈입니다.
그것은 오해의 연속이며 이해 불가의 왜곡된 시야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상대로부터 그 일이 시작된 일의 경우라도
알고 보면 모두 과거의 전생으로부터 이어지는 것이 거의 대부분 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드라마로부터 벗어나야만 합니다. .
서로가 엮여서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죽고 죽이는 드라마를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진짜의 삶 본질의 삶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매사에 매 순간마다 왜 그러한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에 고난이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나의 과거에 대한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요?
 
바로 여기 나의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개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덕을 쌓는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일이 터졌을 때 그 일은 해결하기 위해서 덕을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해소할만한 덕을 쌓으면 해결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상수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책입니다.
 
상수는 일에 당착해서 해법을 찾기 보다는 평상시에 대비를 해두고 있습니다.
덕을 잘 쌓는 방법은 평상시에 한가로울 때 덕을 쌓아 두는 방법입니다.
덕을 쌓을 때는 그냥 하는 것보다는 의도적으로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덕을 닦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덕을 쌓으려면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덕이라는 것은 상수이게 때문에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덕을 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중들의 삶에서 보면 지죄에 걸려 지가 죽는다고 하죠.
그만큼 대중들은 길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대중들은 수가 모자라므로 무엇을 해도 많은 이익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수가 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쌓아나가야 합니다. 계획을 세워서 길을 찾아나가면 좋습니다.
 
천진한 마음으로 덕을 쌓으면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보이면 어진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돕는 것인데요. 이것이 상수가 됩니다.
 
 
인(仁)이라 함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베푸는 마음입니다.
인은 자식에게 조건 없이 무한히 베푸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아무 조건없이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어 주는 마음이 인이에요.
이러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세상이 변화합니다.
의라는 것은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데요.
물질을 사람보다 앞세우면 반드시 재앙이 옵니다.
의라는 것은 뭐냐면 사람이 중심을 중심으로 삼는 마음입니다. 
의에 입장에서는 사람이 본질이에요. 물질이 말단인거에요.
 
상수는 인의를 실천하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수는 물욕의 이익은 우선하므로 인의를 저버리므로 해서 마치 물리적 이익을 얻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
그러나 삶이란 인간의 마음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수의 삶은 언제나 고단합니다.
만가지 질병이 창궐하고 사고가 나며 재앙이 닥쳐오게 됩니다.
그래서 오로지 물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대중들의 삶은 매우 위태한 것입니다.
 
상수의 삶은 순탄하게 나타납니다.
상수는 병이 없으며 사고가 없고 재앙이 없습니다.
상수는 빛과 같이 가볍고 밝습니다.
온화하고 평안하여 심신이 안정됩니다.
 
사람이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길은 늘 덕을 베푸는 길입니다.
덕을 쌓으면 하늘로 부터 복을 받아 자손 만대로 길이길이 창성합니다.
대중들의 근시안은 오로지 육안으로 보이는 물리를 중심 삼으므로
위태한 것입니다.
 
자 여기서 인간의 삶을 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세상에 올 때 태산과 같이 많은 짐을 지고 옵니다.
인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인간이 짊어지고 온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고온 짐을 내려 놓고 싶어 합니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만 봐도 인간은 자신이 지은 업보를 덜어내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이 짊어진 짐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처첨 
절대 저절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 업보는 결코 저절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업보라는 것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사람이 덕을 많이 쌓으면 아무리 비록 과거의 생에 쌓은 악업이라도 머지않아 반드시 소멸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중들은 오로지 이익을 좆을 뿐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일은 절대 안 하려 하죠.
 
그러니까 덕을 쌓기 위해서는 손해를 볼 줄도 알아야 하죠.
덕을 쌓으려면 적당히 손해를 볼 줄도 알아야하는데
끊임없이 이익만 보려 하니 이것이 재앙이 됩니다.
그런 것이 다 암이 되고 당뇨가 되고 사고가 되어 나타나는 거에요.
덕을 쌓는다는 것은 나누어 주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주니까 마치 손해를 보는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절대 그게 손해가 아니거든요.
나중에는 열배 백배가 되어 다시 되돌아 오거든요.
 
그러니 대중들은 정말로 덕이 부족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중들의 삶이 쉽게 좋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빈익빈 부익부가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상수는 의도적으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베풀어 줍니다.
그런데 하수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투자한 것은 언젠가 다시 되돌아 오거든요.
복이 눈덩이 처럼 커져서 다시 나에게 되돌아 옵니다.
결과적으로 상수는 거대한 이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하수는 투자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가난이 반복되어
늘 헐떡거리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늘이 시험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천만원 빚이 있는 이에게 시험을 하는데요.
하늘이 나에게 어디에서 한 오십 만 원쯤 어떻게 해서 돈을 줍니다.
그리고서 내 앞에 어려운 사람을 나타나게 합니다.
그 사람이 너무나 다급한 상황입니다.
자기 가족이 급히 수술을 받는다고 급전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좀 도와주라고 합니다.
반드시 도와주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오십만 원이 있는데 그 돈을 언능 내어주면 상대의 어려움이 해결 됩니다.
근데 나는 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내가 지금 너무도 쪼들리기 때문이죠.
사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이 더 급해요.
그런데도 외면해 버립니다.
나도 지금 당장 다급한 일이 줄을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와야하지만 상대를 도와주지 못하고 맙니다.
나도 죽을 지경이라 남의 어려움을 외면해 버립니다.
하늘의 시험은 이미 결정 났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주겠는지요?
 
이것이 비유인데 덕이란 것이 돈이 많아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인애의 사랑과 의리의 밝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베푸는 것이 덕입니다.
하지만 의식의 가난뱅이는 마음도 생각도 빈곤에 찌들려서
도무지 남에 대해서 거의 베풀지 못합니다.
늘 남에게 자신이 다 쓰고 남는 찌끄레기 정도를 베풀게 됩니다.
이것이 참으로 인색한 일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실정이 이러다 보니 대중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덕을 쌓아야만 돈이 도는데 현실 탓으로 덕을 쌓지 못합니다.
대중들은 자신이 가진 게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쪼들리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단 한 번도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의식속에 오로지 없다. 안 된다. 힘들다는 생각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 했더니
물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 물고기 한마리 주면 머합니까?
그러면서 자신은 단 한번도 거지에게 돈을 준적이 없다고 말하는데요
거지의 삶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후하다는 것은 너그러이 준다는 뜻입니다.
각자의 선택이므로 남으로 돕든 안 돕든 선택입니다.
또 세상에 어질고 의로운 일이 거지에게 밥한끼 사고 안 사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해야 할 일도 찾아보면 많이 있습니다. ^^
 
덕이 부족하면 돈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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