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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 위치

이스라엘 위치 출처: 구글지도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출처: 구글지도

1. 개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하 이-팔 분쟁)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유대인과 아랍인 간 영토 분쟁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양 세력의 민족적 · 종교적 정체성에 따른 갈등과 결부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해 온 아랍인과 민족국가 건설을 추진해 온 유대인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1948년 5월에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동전쟁이 발발했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팔 분쟁의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 아랍인'(이하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정치적 실체로서 부상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이후로 온건 · 중도파 성향의 파타(Fatah)당과 대항세력으로 부상한 하마스(Hamas) 간 갈등이 표출되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 Palestine Islamic Jihad)'가 하마스의 경쟁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해 이-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한계를 보여주는 가운데 양측의 유혈 충돌이 반복되고 있으며, 올해 8월에는 이스라엘군과 PIJ 간 교전이 발생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가 경제적 접근법을 통해 협력적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미 바이든 행정부는 이-팔 양측의 동등성 원칙을 견지하면서 팔레스타인과 외교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역내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강조하는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아랍국가들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의지가 약해질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2. 전개

1) 이-팔 분쟁의 역사적 기원과 이스라엘의 건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mandate) 하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그리고 가자(Gaza) 지구를 포괄하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1) AD 135년경 로마에 의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추방된 이후에는 아랍인들이 통치해 왔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유럽에 고조된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시오니즘(Zionism)이 부상하면서 유대인들의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건설을 지지한다고 약속한 1917년의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에 따라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당시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 민족국가의 건설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간 영토 분쟁의 가능성을 초래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이라크 및 요르단과 함께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편입시킨 후 유대인 우대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지역 이주가 계속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와 맞물려 유대인 이주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토지 소유권 등 경제적 문제가 얽히면서 아랍인들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영국은 아랍인의 협력을 담보하기 위해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하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하지만 유대인의 저항을 초래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간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다.2)

제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이-팔 분쟁의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되었다. 그 결과 1947년 4월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특별회의가 소집되면서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SCOP)'가 설치되었다. 동 위원회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나누는 방안과 아랍인과 유대인을 포괄하는 연방 국가 창설 방안 등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동년 11월에 개최된 제2차 유엔총회의 결의 제181호를 통해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 분할 방안이 채택되면서 가자(Gaza)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그리고 동예루살렘 등이 팔레스타인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3) 이후 팔레스타인 통일국가 수립 방안을 제시한 아랍권의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다.

2)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구역의 축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이 일방적으로 선포되자 이집트를 비롯한 7개 아랍국가가 반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동 전쟁은 유엔의 적극적인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가 개별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종결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80%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56년 10월에 발생한 제2차 중동전쟁을 통해서 다시 한번 충돌하였다.4)

1967년 6월 발생한 제3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 시리아 연합군을 중심으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에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반격을 통해 군사적 대승을 거두면서 동 전쟁은 단 6일 만에 종료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 골란(Golan)고원, 가자 지구, 그리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다시 발생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은 이-팔 분쟁과 아랍-이스라엘 갈등 구도에 심대한 영향을 초래하였다.5)

제3차 중동전쟁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목적으로 이집트 · 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1973년 10월에 발생한 동 전쟁의 초반 국면에서는 아랍권이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시리아와의 접경 지역인 골란고원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전세를 역전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유리한 상황에서 유엔이 현상유지의 원칙을 바탕으로 개입하면서 종전되었다. 이후 미국의 중재로 1978년 9월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체결하면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시나이반도를 반환하였다.6) 이와 대조적으로 제3차 중동전쟁에서 차지한 다른 지역에 대한 점령 정책을 유지하면서 국제법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중동전쟁의 결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구역이 상당 부분 축소되면서 이-팔 분쟁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 구역의 축소 과정

팔레스타인 아랍인 구역의 축소 과정7)

3)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자신의 사명으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미 · 소 냉전기 시기에는 이-팔 분쟁의 해결을 추동하기 위한 평화 프로세스가 가동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1978년 9월에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간 체결된 최초의 평화협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시나이반도의 반환이라는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 반환 문제와 같이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쟁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은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시작하였다. 1991년 10월에 개최된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이 그 출발점이었다.8) 동 회담은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과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 인정을 주요 의제로 논의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아랍국가 회담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회담이라는 두 개의 대화 창구가 개설되었다. 이후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간 개별 양자 회담이 1992년 1월부터 미국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1992년 6월 총선에서 개방적인 실용적 노선을 견지한 '이스라엘 노동당(Israeli Labor Party)'이 이념적 성향의 리쿠드(Likud)당에 승리하면서 아랍국가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고대 이스라엘의 일부로 규정해 온 리쿠드당과 달리 노동당은 영토에 대한 타협에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노동당 정부는 팔레스타인과 직접 회담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의 국내정치적 변화와 미국의 중재를 배경으로 이-팔 양측은 1993년 9월에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을 체결하였다.9) 양측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확대에 합의했으며, 이스라엘이 예리코(Jericho)와 가자지구 등 일부 점령지역에서 철수하였다. 주목할 점은 양측이 '영토와 평화의 교환(land for peace)'이라는 평화 프로세스의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즉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중동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반환이 필수적이라는 원칙에 양측이 합의한 것이다. '2국가 해법(two-states solution)'을 확립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양측이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개 국가를 건설하고 평화 공존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은 미국과 러시아, 유엔, 그리고 유럽연합(European Union)의 지원을 바탕으로 2003년 가동된 '중동평화 로드맵(Road map for Peace)'을 통해서 다시 탄력을 받게 되었다.10) 협상 참여자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규정된 팔레스타인 평화정착 방안을 구체화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건설의 로드맵을 도출하였다. 특히 미국이 '2국가 해법'에 동의함에 따라서 동 로드맵의 추동력이 담보될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서 이-팔 분쟁 해결에 관한 관심이 낮아지면서 추동력이 약해졌다.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규정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 및 '2국가 해법'이라는 원칙을 견지하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관련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은 2020년 1월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발표한 새로운 중동평화구상을 통해 제시되었다.11) 동 구상의 핵심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이 기존에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 지역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이집트 국경 인근 사막지대를 팔레스타인에 양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이 수용될 경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과 주변 아랍국들에 50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경제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평화에서 번영으로(Peace to Prosperity)'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 구상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중동평화협상을 추동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이를 즉시 거부하였으며, 역내 국가들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선 실패와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의 연임 실패가 맞물리면서 동 구상의 추동력이 상실되었다.

중동평화를 위한 주요 협상과 논의 내용

중동평화를 위한 주요 협상과 논의 내용
시기 협정 논의 내용

1978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반환

1991

마드리드 평화회담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 인정

1993

오슬로 협정

영토와 평화의 교환, 이-팔 2국가 해법

2003

중동평화 로드맵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의 로드맵

2020

중동평화구상

서안지구 정착촌 주권 인정, 대규모 경제지원

3. 분석

1) 이-팔 분쟁의 주요 쟁점

이-팔 분쟁의 핵심 쟁점은 1967년 중동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다. 특히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및 분리장벽 설치 문제에 따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의 갈등 해소가 관건이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개선 의지가 없으며, 국제사회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내 이스라엘 정착민 현황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내 이스라엘 정착민 현황12)

동예루살렘에 대한 영유권 문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도시이다. 따라서 이 지역을 둘러싸고 양측은 민족적 · 종교적 정체성 차원에서 대립 구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동예루살렘은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도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왔으며, 그 결과 팔레스타인 측과 갈등이 표출되는 상황이다.

인도주의적 문제 역시 이 · 팔 분쟁의 핵심 쟁점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국으로서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채 봉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의 의무 위반이며,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문제 역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쟁점 사항이다.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서 난민 귀환에 대한 보장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차원에서 구체적 해법이 도출되지 못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이견 조율도 어려운 상황이다.

2) 팔레스타인 정치세력의 내분 분열과 협상력 약화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1964년 5월에 창설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서 부상하게 되었다. 창설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국제사회에서 테러집단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1973년 12월 알제리에서 개최된 제6차 아랍정상회담(Arab Summit Conference)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로 승인되었다.13) 이어서 1974년 11월에 개최된 유엔총회의 결의 제3237호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해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치권, 민족 독립과 주권을 가질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중동평화 달성을 위한 중요 당사자 지위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유엔 참관(observer) 자격까지 부여하면서 테러집단이 아닌 정치적 실체로서 인정하였다.14)

팔레스타인 자치권의 확대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1994년 7월에 자치정부의 수립을 천명하였다. 이로써 입법 · 사법 · 행정부로 구성된 통치기구로서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e Authority)가 창설되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이끌어 온 아라파트(Yasser Arafat) 의장이 2004년에 사망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자치권을 인수하였다. 이어서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국가로 격상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2012년 11월에 통과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실질적인 국가의 정부로서 변모하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이후 아라파트 의장이 이끌어 온 파타(Fatah)당과 하마스 간 경쟁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파타당은 중도 성향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자치정부를 주도하였다. 반면 1987년의 팔레스타인 민중봉기를 계기로 창설된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이라는 의미 그대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면서 무장 투쟁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2005년에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전면 철수하자 하마스가 이 지역을 장악했으며, 이어서 2006년 1월에 실시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향력이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국한되었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팔레스타인 정치세력의 내부분열은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력 담보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타당과 하마스의 주요 활동 거점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간 지리적 분절은 팔레스타인 정치세력의 내부적 역량 통합에 제약 요인이다. 또한, 양측이 견지하고 있는 노선의 차이로 인해 대(對)이스라엘 정책 공조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아가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빈번히 발생하는 무력 충돌로 인해 이-팔 분쟁의 악순환이 초래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 상황을 배경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이다.15)

3) 평화 프로세스의 취약성과 유혈 충돌의 반복

중동 지역에서 추진된 평화 프로세스는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를 목적으로 한다. 중동 지역의 평화를 담보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 측면이 밀접히 연계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역내 아랍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은 이-팔 분쟁의 쟁점 해결을 위한 협상과 긴밀히 연계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연계성의 부재를 배경으로 이-팔 양측의 유혈 충돌이 발생하였다. 또한, 이-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협상 역시 유혈 충돌의 발생을 방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동평화 프로세스의 취약성은 1978년 9월에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 사례를 통해서 확인된다. 동 협정이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논의하지 못한 배경에서 팔레스타인 민중봉기를 의미하는 인티파다(Intifada)가 발생하였다. 1987년 12월에 발생한 제1차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인 4명이 이스라엘군 차량에 치여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되면서 1993년 9월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동년 9월에 오슬로 협정이 타결되었지만, 후속 평화협상에서 진전이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리쿠드당 당수이자 극우 정치인인 샤론(Ariel Sharon)이 2000년 9월에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Al-Aqsa) 사원을 방문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한 제2차 인티파다가 2005년 2월까지 계속되면서 양측의 유혈 충돌로 확대되었다.

제2차 인티파다 이후 2003년에 중동평화 로드맵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2006년 1월 실시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투쟁 노선을 견지하면서 양측의 유혈 충돌이 반복되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대상으로 즉각적인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이어서 자국민에 대한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유대인 정착촌이 있는 서안지구에 장벽과 검문소를 설치하면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봉쇄하였다. 또한, 200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하마스의 본거지를 궤멸시킨다는 명분으로 지상군과 공군을 동원해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그리고 2014년 6월부터 8월 간 양측의 교전에서는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 2,1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이스라엘군 66여 명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16)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 역시 중동평화 프로세스의 취약성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미국은 지역 전략의 차원에서 역내 국가들을 중재하면서 중동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도 깊이 관여해 왔다. 하지만 미 역대 행정부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 정치세력의 반발로 인해 평화 프로세스가 진전되지 못하였다.17)

이러한 문제점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노골적인 친 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시 부각하였다. 우선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7년 12월에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했으며, 2018년 5월에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였다. 이어서 2019년 3월에는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해 온 골란고원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의 건설을 합법적 행위로 규정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다. 나아가 2020년 1월에는 이스라엘에 편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하였다.18)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적 정책은 이-팔 분쟁을 고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배경으로 2018년 7월에 이스라엘 의회는 이스라엘을 '유대인 민족국가(Nation-State of the Jewish People and Them Alone)'로 선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9년 3월에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의 나라'로 선언하였다. 또한, 2020년 3월의 총선을 앞두고는 서안지구를 합병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다.

팔레스타인 측은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에 반발하면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마스가 새로운 인티파다의 시작을 선포하면서 위기가 고조되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갈등은 2021년 5월에 발생한 교전을 통해서 표출되었다. 동 교전 과정에서 가자지구에서 최소 24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이스라엘 측에서는 최소 225명의 하마스 조직원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19) 11일간 계속된 양측의 유혈 충돌은 이집트의 중재로 일단락되면서 5월 21일부로 휴전에 합의했다.

4. 전망

1993년의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로 미 민주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2국가 해법'을 이-팔 양측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규정해 왔다.20) 이러한 민주당 정책 기조의 바탕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적 접근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21)

첫째, 바이든 행정부는 이-팔 양측이 동등한 권리와 이익을 가져야 한다는 당사자 동등성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둘째, 당사자 동등성의 원칙에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이스라엘 편향성에 비판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정착촌 건설 및 합병에 반대하고 있으며,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세적 군사작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셋째,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목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외교적 연대 회복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 상징적 조치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폐쇄된 예루살렘 주재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동예루살렘에 다시 개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주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 이란 핵 문제와 예멘 내전 해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함에 따라 이-팔 분쟁의 상대적 중요성이 낮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팔 분쟁의 점진적 해결이라는 원칙론만 강조한 채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출범 후 4개월 만에 발생한 2021년 5월의 이-팔 유혈 분쟁과 관련해서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만 표명한 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경책 역시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도전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22) 2009년 3월 이후 12년간 집권해 온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팔 분쟁을 고조시켰다. 네타냐후의 실각 후 2021년 6월에 취임한 베네트(Naftali Bennett) 총리 역시 취임 직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단행하는 등 전임 정부의 강경책을 계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 합의 이후에도 양측의 군사적 긴장 구도가 해소되지 못했다.23)

이와 더불어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만의 수도로 규정하면서 동예루살렘에 영사관을 재개관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 모습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영사관의 재개관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간 갈등이 표출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네타냐후 당시 총리의 집권 연장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일명 '무지개 연정'이 올해 6월 말 해체되고 베네트 총리가 사퇴하면서 라피드(Yair Lapid) 외무부 장관이 총리 직무대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라피드 임시 내각의 출범 이후 이스라엘 방위군은 올해 8월 5일부로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 Palestine Islamic Jihad)' 시설을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을 목적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24) PIJ를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군의 Breaking Dawn 작전으로 시작된 3일간의 교전 이후 양측은 이집트의 중재로 8월 8일부로 휴전에 합의했다.25)

동 교전과 관련한 이스라엘 내부의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6) 첫째, 베네트 내각 출범 이후 이스라엘이 유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책 기조에 주목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경제적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하마스와 PIJ를 차별화하는 정책 기조를 통해 동 교전 과정에서 하마스가 관여하지 않는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즉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이해관계를 조율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둘째, PIJ가 팔레스타인 저항 주도세력으로서의 입지 강화에 실패한 가운데 하마스의 정책 변화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즉 이스라엘의 정책 변화와 맞물려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동력을 유지하려는 기존의 정책으로부터 권력 유지와 민생 안정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유화적 노선을 견지할 가능성이 전망되는 것이다.27) 셋째, 라피드 임시 총리가 동 교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에 따라 올해 11월 예정된 총선에서 네타냐후 전 총리가 주도하는 연정을 상대로 유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비관적인 국제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역내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강조하는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아랍국가들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의지가 약해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행정부의 적극적 중재를 통해 2020년 9월에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Bahrain)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동 협정의 내용을 확장하면서 중동평화를 담보하려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28)

물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는 중동 지역에 대한 국력의 투입을 축소하려는 미국의 지역 전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29)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경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적 · 정치적 이익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30) 이-팔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의지가 낮아진 가운데 아랍 국가들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의지마저 약해진다면 팔레스타인의 소외감 역시 커질 것이다.31)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에 따른 반작용으로 팔레스타인 측이 폭력적 저항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팔 분쟁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

【참고: 주요 일지】

1947. 09. 03.
•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SCOP), 팔레스타인 분할안 제시

1947. 11. 25.
• 유엔총회, 결의 제181호를 통해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 분할안 채택

1948. 05. 14.
• 이스라엘 건국 선포

1948. 05. 15.
• 제1차 중동전쟁 발발 (1949년 3월 10일 종료)

1956. 10. 29.
• 제2차 중동전쟁 발발 (11월 7일 종료)

1964. 05. 28.
•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 창설

1967. 06. 05.
• 제3차 중동전쟁 발발,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점령 (6월 10일 종료)

1973. 10. 06.
• 제4차 중동전쟁 발발 (10월 26일 종료)

1973. 12. 04.
• 제6차 아랍정상회담, PLO를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 · 합법적 대표로 승인

1974. 11. 22.
• 유엔총회, 결의 제3237호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엔 참관 자격 부여

1978. 09. 17.
•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반환

1987. 12. 08.
• 제1차 인티파다 발생 (1993년 9월 종료)

1988. 11. 15.
•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 팔레스타인 독립국 선포

1991. 10. 30.
•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 개막,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과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 인정 등 논의

1993. 09. 13.
• 오슬로 협정 체결, 영토와 평화의 교환 원칙 합의 및 2국가 해법 확립

2000. 09. 28.
• 제2차 인티파다 발생 (2005년 2월 종료)

2003. 04. 30.
• 중동평화 로드맵 최종안 발표

2014. 07. 08.
•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교전 발생 (8월 26일 종료)

2017. 12. 06.
• 트럼프 미 대통령,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

2018. 05. 14.
•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2018. 07. 19.
• 이스라엘 의회, 이스라엘을 '유대인 민족국가'로 규정한 민족국가법 채택

2019. 03. 04.
• 미 국무부, 팔레스타인 업무를 담당하던 예루살렘 총영사관을 공식 폐쇄

2019. 03. 10.
•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의 나라'로 발언

2019. 09. 10.
• 네타냐후 총리,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합병하겠다는 공약 발표

2019. 11. 18.
• 미 트럼프 행정부,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합법적 행위로 규정한다고 발표

2020. 01. 28.
• 미국과 이스라엘,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 인정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 내용을 담은 중동평화구상 공동 발표

2020. 09. 15.
• 이스라엘과 아랍국가(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관계 정상화 내용을 담은 아브라함 협정 체결

2021. 05. 10.
•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 발생, 11일간 교전 과정에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최소 243명 사망 (5월 21일 휴전)

2021. 05. 21.
• 바이든(Joseph Biden) 미 대통령,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 국가로 존재하는 '2국가 해법'이 양측 분쟁의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라고 발언

2021. 05. 25.
• 블링컨(Anthony Blinken) 미 국무장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예루살렘 영사관을 재개관할 것이라고 발언

2021. 06. 13.
• 네타냐후 집권 연장 저지를 위한 일명 무지개 연정 출범, 베네트(Naftali Bennett) 이스라엘 신임 총리 취임

2021. 06. 15.
• 이스라엘 방위군(IDF), 가자지구 내 하마스 군사시설 공습 단행

2021. 10. 13.
• 블링컨 미 국무장관, 예루살렘 영사관 재개관 방침 재확인

2021. 11. 06.
• 베네트 총리, 기자회견을 통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만의 수도로 규정하면서 미국의 예루살렘 영사관 개설에 대한 반대 의사를 재확인

2022. 03. 22.
• 남부 베르셰 지역에서 IS 추종세력인 팔레스타인인의 흉기 난동으로 이스라엘 시민 4명 사망

2022. 03. 27.
• 북부 하데라 지역에서 IS 추종세력인 팔레스타인인의 총기 난사로 이스라엘 국경경비대 소속 경찰관 2명 사망

2022. 03. 29.
• 텔아비브 인근 초정통파 유대교도 집단거주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괴한의 총격으로 최소 5명 사망

2022. 04. 07.
• 텔아비브 시내에서 팔레스타인인 총기 난사로 이스라엘 시민 3명 사망

2022. 04. 09.
• 이스라엘 방위군, 텔아비브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 출신지인 팔레스타인 서안 제닌(Jenin) 지역 난민캠프 일대를 봉쇄, 대대적 수색 및 공격 단행

2022. 05. 31.
• 미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예루살렘 영사관 재개관을 위해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과 논의 중이라고 밝힘

2022. 06. 09.
• 미 국무부,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방문이 조율되는 가운데 예루살렘 주재 대사관 산하 '팔레스타인과(PAU)'를 '팔레스타인사무소(OPA)'로 확대 개편함

2022. 06. 20.
• 이스라엘 현지 언론, 일명 무지개 연정이 출범 1년여 만에 자발적인 해체를 추진한다고 보도

2022. 06. 30.
• 무지개 연정이 해체됨에 따라 라피드(Yair Lapid) 외무부 장관이 총리 직무대행을 담당하게 됨

2022. 07. 03.
• 라피드 임시 총리 주재로 첫 내각 회의 개최

2022. 08. 05.
• 이스라엘 방위군,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 (PIJ)' 시설을 대상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선제적 공습 단행 (IDF, 성명을 통해 "임박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공습을 단행하면서 국내 전선에 특별상황을 선포했다고 발표)

2022. 08. 07.
• 영국 Economist지, 가지 지구 공습으로 라피드 총리 대행이 11월에 예정된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도

2022. 08. 08.
• PIJ를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군의 Breaking Dawn 작전으로 시작된 3일간 교전 이후 양측이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함 (팔레스타인 측, 동 교전으로 가자 지구에서 아동 포함 43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고 주장)

2022. 09. 04.
• 이스라엘 당국, 10월 20일부로 시행 예정인 서안지구 거주 외국인 대상 신규 출입 규정 발표 (해당 지역 외국인 거주자와 출입자의 이동통제 확대 목적)

2022. 09. 22.
• 라피드 총리, 유엔 연성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2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 ("2국가 해법에 기반한 팔레스타인과의 합의는 이스라엘의 안보와 경제, 그리고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발언)

마지막 수정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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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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