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데 안 고쳐져요,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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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2.26. 오후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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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의사, 교육전문가, 연애심리코치 등


전문가들도 제머리 못깎는 해결불가 고민열전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아는데 안 돼요.” 설도 지나고 어느덧 2월 말. 작심삼일의 유효기간이 진작 끝난 이맘때. 몇번이나 이 말을 내뱉었던가. 다이어트 계획을 뒤로하고 야식을 먹은 뒤 잠자리에 누워 트림을 하며, 금연 일주일 만에 값비싼 담배 굽신굽신 얻어 피우며, 화를 못 참고 자식에게 퍼붓고 돌아서며, 술 먹은 다음날 통화 내역을 확인하며 우리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안다. 다 안다. 아는데 안되는 거다. “아는데 안돼요”란 이 단순한 문장은 둘로 나뉜다. “안다”와 “안된다”. 여기서 여러 질문이 파생한다. “아는데 왜 안될까” “진짜 아는데도 안되는 걸까” “안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그 모든 질문의 끝, 자학의 늪에서 허우적대자면 소리쳐 묻고 싶어진다. “그럼 진짜 아는 사람들은 정말 잘한답디까?”

그래서 대신 물었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에게, 당신들은 진짜 아니까 정말 잘하느냐고. 다양한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이 질문을 듣고 낸 첫 소리는 대략 이러했다. “헐” “헉” “허… 참”. 하지만 그들은 용기 있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주었다. 잘 아는 나도 실은 잘 안된다고. 그 고백들을 재구성해 공유하는 까닭은, 이렇게라도 위로를 주고받으며 자학의 늪에서 기어나와 보자는 뜻이다. 덤으로 ‘아는데 안돼요’병 처방전도 준비했다.

시커먼 폐 보면서
담배 무는 해부학전문의
연애성공 위한 조언 하면서
메신저 매달리는 관계전문가 등
왜 아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나도 그만 ‘1’을 노려보고 말았네”
남녀 심리 분석 전문가의 밀당 실패기


“조바심 내면 안돼. 기다리지 말자.” 주문처럼 이 말을 중얼거릴수록 더 조바심이 나고 더 기다려졌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성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지 이제 겨우 5분. 그러지 않으려 해도 손가락은, 눈은 계속 답장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려 스마트폰 주변을 맴돌았다. 상대가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알게 해주는 ‘1’ 표시가 사라지지 않자 인내심은 자꾸 바닥을 드러냈다.

내가 누군가. 명색이 ‘관계 분석 전문가’다. 내가 몸담은 회사인 ‘스캐터랩’은 남녀 심리 분석 전문 회사다. ‘텍스트앳’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애 코치를 해준다. 나는 바로 그런 회사의 일원이란 말이다. “관계 초반의 메시징은 매우 중요해요. 특히 소개팅 직후 대화를 나눌 때는 사소한 말투, 스티커 사용, 단어 선택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상이 결정되니 신중해야 합니다. 답신이 안 와 조바심을 내거나 남성의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ㅎ’를 남발하면 안 되죠.”

그 모든 것을 다 아는 이 남성은 두 시간 뒤 ‘1’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새 문자를 보내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오전 10시에 보낸 “출근 잘 했어요?”에 아무런 답이 없었음에도 12시에 “점심 맛있는 거 먹어요”라고 보낸 것. 급기야 ‘1’이 안 지워졌는데도 한 시간 뒤 또 다른 ‘톡’을 날렸다. “맛있는 거 먹었어요? ㅎ” ‘ㅎ’라니!

“여자들이 싫어하는 메시징 특성인 ‘ㅋ’ ‘ㅎ’를 하나만 붙여서 쓰는 말투를 사용하면, 이후에 아무리 좋은 인상을 남겨도 쉽게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말 한마디로 인연을 그르칠 수도 있는 거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리하여 스캐터랩의 직원 7명 중 솔로가 6명이라나….



시커먼 허파 보고도 담배 한 대
해부학 전공 의사의 금연 실패기




“1980년대에 나는 시신의 허파를 처음 봤다. 가슴우리를 열고 허파를 꺼내서 보니까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살아 있을 때 먼지를 들이마셨기 때문이었고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검은 점이 절반 넘게 차지한 허파도 있었는데 대충 봐도 허파 쓰임새에 문제가 있었다. 이런 허파는 남성 시신에서만 볼 수 있었으며 마땅히 담배 때문이었다. 끔찍한 허파를 본 나는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곧 쉬는 시간이 되자 이렇게 말했다. “담배 한 개비 줘라. 그 허파 때문에 속이 탔더니 담배가 더 생각난다.” 안타깝게도 해부학 실습은 담배 끊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나는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100개가 넘는 허파를 해부했다. 담배 피운 사람의 허파가 많았고 그 허파는 딱딱해서 해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 혹시 내 허파 때문에 누가 고생할까봐 벌써 미안하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박사학위 때문에 속이 타는 것을 달랜다는 명분이었다.”(정민석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의 책 <해부하다 생긴 일>(2015) 중에서)



안과 의사도 어둠 속에 스마트폰을…
안과 의사의 스마트폰 탈출 실패기




안과 의사 ㄷ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 너머 아이 우는 소리. “잠시 뒤에 전화할게요.” 얼마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우는 애는 어떻게 달랬어요?” “애가 울 땐 역시 뽀로로죠. 뽀로로 영상 켜주니까 꼼짝도 않고 보네요.” 안과 의사가 4살 아기를 달래는 방법도 역시 ‘뽀로로’였다니! “그래도 너무 오래는 안 보여줘요.” 비겁한 변명이 이어졌다.

“환자들에게는 늘 이야기하죠. 모니터, 스마트폰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마라.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해야 한다면 자주 눈 운동을 해주고 가습기를 켜서 눈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해라. 하지만 정작 가장 오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안과 의사일걸요?”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모니터를 본다고 고백했다. “환자 눈을 들여다볼 때도 현미경이나 모니터를 보거든요. 그런데 일 끝나고 집에 있을 때도 자꾸 노트북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뉴스를 보게 되더라고요.”

안과 의사 ㄹ, ㅁ, ㅂ의 고백도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보는 거, 눈에 정말 안 좋죠. 누구보다 잘 아는데 잠자리에 누우면 스마트폰에 자꾸 손이 가더라고요. 이건 정말 환자들에게 비밀이에요.”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닌데”
교육 전문가의 불안 탈출 실패기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닌데요.” 말을 내뱉는 순간 후회했다. “자신의 자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될 경우 많은 부모가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현실을 부정하죠. 자기 아이만 두둔하는 부모의 그런 태도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 교육 전문가로서 방송에까지 출연한 자신이 부모들에게 여러번 해온 조언이었다. 그런 ㄱ교수는 자신의 아이가 ‘왕따 가해자’이니 학교로 와달라는 담임교사의 연락을 받고 나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자녀교육 전문가인 ㄴ씨도 마찬가지. 그는 요즘 자신의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쏟는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너무 비뚤어지고 있다는데 주변 사람들이 듣기에는 황당한 수준. 지각을 몇번 했다거나 선생님을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봤다든가 하는 정도다. 비행이나 문제행동은 없는데도 ㄴ씨는 세상 끝난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제가 전문가인데 아이가 똑바로 자라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워요.” 부모의 불안과 지나친 간섭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오던 그는 이렇게 말하며 또 눈물을 쏟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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