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 마당쇠야..' 어느 택배기사의 변명

변이철 2012. 3. 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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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의 애환 담은 장문의 글..누리꾼 잔잔한 감동

[노컷뉴스 변이철기자]

올해로 택배기사 경력 10년 차인 김 모 씨. 아침 7시부터 시작된 고된 일을 마치고 밤 9시 집으로 돌아와 소주 한 잔으로 하루 피로를 푼다.

바로 그 때 휴대폰 벨이 울린다.

"아저씨 여기 OO아파트 0000호인데요. 쌀을 경비실에 놔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아까 방문했는데 안 계셔서… 죄송합니다."

"이봐요. 그거 무거워서 일부러 택배 시켰는데… 내일 와서 다시 가져다주세요. 안 그러면 클레임 걸 거니까."

김 씨는 술맛이 딱 떨어졌다. '내가 택배기사지 뭐 그 집 마당쇤가…' 혼잣말로 잠시 투덜거리는 사이 또 전화가 걸려온다.

"아저씨~ 집 앞에 냉장식품 놔두고 가셨던데 우리 집 물건 아니에요."

"아니 그럴리가요. 제가 분명히 주소 확인하고 전화 안 받으시길래 식품이라 할 수 없이 두고 온 건데요."

"아니에요. 그분들 어제 이사갔어요. 다시 가져가세요."

'주소오류'라도 확인절차 소흘로 반 정도는 물어줘야 한다. 근데 하필이면 '한우갈비'란다. '으~ 그 고객은 하필 그때 전화를 안 받아 내가 이걸 물어줘야 하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화가 치민다.

그런데 또 따르릉. '미치겠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아저씨 저 어디사는 누군데요. 아까 물건 앞집에 맡겨놨지요?"

"예. 전화도 안되고 집에 안계셔서 앞집이라 좀 맡겨두었습니다."

"이봐요. 아저씨! 사람이 없으면 나중에 오면 되잖아요. 저 그집 사람이랑 얼마전에 싸워서 사이가 안 좋단 말이에요. 내일 다시 오셔서 물건 찾아주세요."

김 씨에게 물었다. "왜 좀 더 미리 꼼꼼하게 챙기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구밀집 중급도시 기준으로 택배 한 건당 수수료는 평균 800~900원 정도다.

그 가운데 부가세가 80~90원, 전화 혹은 문자비용이 50원이다. 그나마 고객과 입씨름 한 번 하면 전화비용만으로도 배달료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 일쑤다.

여기에다 차량 유지비와 물건을 집하받기위한 비용, 자동문자발송서비스 20원 등을 따지면 한 건당 400~500원 정도의 수수료를 벌기 위해 택배기사들은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객이 집에 없는데다 마땅히 맡길 곳도 없어 그 집을 두 번 가면 수수료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 400원을 위해 20킬로그램짜리 쌀을 들고 3~4층을 올라가서 '어~ 사람이 없네. 그럼 내일 또 와야지.'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택배기사는 없다는 것이다.

김 씨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미리 전화해보고 오면 되잖아요?"

그는 실제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여보세요. OO택배인데요. 조금 뒤에 집에 갈 테니 준비해주세요."

"아저씨 저 지금 밖인데요. 한 30분 있다 갈 건데 그때 오세요."

"저희가 코스가 있어서 그렇게 하면 코스가 꼬이는데요."

"난 그런 건 모르겠고요. 아무튼 그 때 오세요"

실제로 한 집 때문에 되돌아가면 최소한 10분은 손해보고 10분이면 두세 집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전화가 하루에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 집에 한 집은 사정 애기를 하며 "문 앞에서 기달려 달라, 좀 있다 오라"고 하니 전화도 쉽게 못한다.

고객의 이런 요청을 받고도 거부하면 당연히 클레임이 들어오고 택배기사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런 일에 지친 택배기사들은 보통 1~2년 안에 대부분 그만둔다. 요즘엔 정말 택배기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묵묵히 일하고 있는 지금의 택배기사들이 있어 소중한 물건들이 각 가정으로 배달되고 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 어느 택배기사의 길고긴 변명 > 이라는 A4용지 12장 분량의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글을 올린 아이디 nj-kim은 "수년간 택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심심찮게 택배기사들의 불친절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글들을 접할 때마다 한편으로 부끄럽고 또 억울하기도 한 생각이 든다."고 썼다.

이어 "지금껏 구절구절 적은 글은 절대 택배 수요자의 이해나 동정을 바라고 적은 것은 아니다. 다만 택배기사들이 모두 바빠서 아무도 해명이나 변명조차 할 사람이 없어서 애틋한 맘에 대신 변명과 해명을 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택배기사의 애환 담은 이 장문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주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다들 힘들게 사는데 서로 서로 배려하면서 살았으면 해요. 그럼 우리 아버지, 우리 남편, 우리 자식들도 일 하다가 다른 사람의 배려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댓글을 달았다.

2iro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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