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시원서 쫓겨날까봐, 우는 아기 입에 수건 물렸다가…

  • Array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죽은 아이와 한방에서 이틀을 보냈다. 살아날까 품에 안고 인공호흡도 해봤다. 처음으로 ‘내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아기를 그냥 떠나 보낼 순 없었다.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 인근에서 만난 김모 씨(26)는 무거운 입을 연 뒤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4일 김 씨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여자 화장실에 갓난아기를 버려 다음 날 영아 살해 및 유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 씨는 당시 굳게 감췄던 이야기를 한 달이 지난 뒤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김 씨가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한 건 처음이다.

김 씨는 늘 혼자였다. 1996년 어머니가 가출한 뒤로 생일을 챙겨준 가족이 없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와도 김 씨를 맞은 건 닫힌 방문뿐이었다. 김 씨는 2007년 11월 집에서 쫓겨난 후 고시원을 전전하며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김 씨는 잠깐 만나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무 준비 없이 지난해 12월 22일 고시원 방에서 혼자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를 안고 “처음으로 내 편이 생겼다”며 뿌듯해한 것도 잠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고시원 총무가 올라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수중에 3만 원밖에 없었던 김 씨는 아이를 들키면 추운 날씨에 바깥으로 내쫓길까 걱정돼 아이 입에 수건을 물리고 알람소리라고 둘러댔다. 그 사이 아이는 숨졌다. 이틀 뒤 주검을 장바구니에 넣고 화장실에 버릴 때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25일 김 씨는 경찰에 검거됐다. 김 씨는 “경찰에 붙잡혀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따스함을 되찾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경찰은 김 씨에게 며칠 굶은 사정을 듣고 설렁탕을 사준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했다. 퇴원한 뒤에는 경찰서 담당 형사 지인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김 씨는 이 집에서 어머니와 딸이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며 가족의 따스함을 느꼈다고 한다. 자살하려는 생각도 지웠다. 그는 “제게도 그 모녀처럼 서로를 아껴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고개를 숙였다.

김 씨 사건을 담당했던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김 씨는 어려운 환경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어 최대한 지원해 주었지만 법의 심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경찰 덕분에 김 씨는 새로운 거처와 일자리를 구했다. 그는 설날에도 일하느라 도움을 준 이들에게 전화로만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씨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서로 신경써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제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곁에 있는 가족을 한 번씩 돌아보고 더 아꼈으면 좋겠습니다.”

광진경찰서는 김 씨를 영아 살해 혐의로 곧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