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던진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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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경제] 구글의 모토롤라 합병 계기로 합종연횡 전쟁에 돌입한 정보기술 산업… 치열한 플랫폼 중심 경쟁에서 살아남을 기업은 어디일까

지난 8월15일 구글이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125억달러(약 13조원)에 전격 인수한 이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IT 기업들의 패권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핀란드 통신기업 노키아의 주가는 17% 급등하고, 블랙베리를 만드는 캐나다의 리서치인모션(RIM)은 토론토 증시에서 9.5%가 올랐다. 글로벌 통신업계의 대표기업인 두 회사의 주가가 지속된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날 급등한 이유는 단 하나다.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에 이어 앞으로 두 기업도 인수·합병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세계 이동전화 시장의 대표주자였던 두 기업이 실적 부진 단계를 넘어 하루아침에 ‘매물’로 언급되고 있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다.

HP의 포기 선언, 삼성의 비상시국

이어 8월17일에는 131년 전에 카메라와 필름 산업을 개척한 이스트만코닥의 주가가 단숨에 26% 폭등해 또 다른 매물로 등장했음을 신고했다. 한때 300억달러에 이르던 기업가치의 98%가 증발하고, 최근 6년 동안 1년 빼고 계속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실적이 악화된 상태지만, 글로벌 특허 전쟁의 새로운 사냥감이 될 법하다는 기대 때문이다. 코닥은 1975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는 등 디지털 이미지 처리 관련 특허 1100여 건을 갖고 있다.

이튿날인 8월18일엔 또 다른 메가톤급 발표가 이어졌다.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인 휼렛패커드(HP)가 영국의 소프트웨어업체 오토노미를 약 100억달러에 인수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또 기존의 주력사업이던 개인용컴퓨터(PC) 부문 분사를 추진하고, 태블릿PC인 터치패드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본업인 PC 제조에서 손을 떼고, 애플 따라하기를 포기한다는 의미다. 휼렛패커드는 하드웨어로 일반 소비자 시장에 주력해왔지만 앞으로는 소프트웨어를 중심에 놓고 기업용 시장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구글의 모토롤라 전격 인수 이후 사나흘 동안 업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8월16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부랴부랴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및 인수·합병 전략을 주문했다. 이 회장의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주문은 글로벌 시장의 숨가쁜 움직임에 비하면 또 한 번의 따라하기 또는 뒷북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지난해 5월 발표한 삼성의 미래전략산업에 소프트웨어는 빠져 있던 탓이다. 삼성이 2030년까지 23조3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5개 분야는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비로소 소프트웨어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숨가쁘게 업계 지형이 변화하는 직접적 계기는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지만, 근본적 이유는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동안의 산업 패러다임을 흔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애플이 혁신적 제품을 기반으로 소비자와 개발자를 끌어들인 생태계를 만들어 번성시킨 데 이어, 삼성 갤럭시탭과 모토롤라 줌 등에 대해 특허침해 소송과 판매금지 가처분신청 등으로 강공에 나선 것이 최근 업계의 합종연횡을 불러왔다.

‘죽기 살기’ 특허 분쟁의 배경

손민선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세 기업이 글로벌 IT 시장을 지배하는, 천하 삼분지계가 완성돼가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막대한 시장 지배력과 현금 동원력을 지닌 기업만 참여하는 거대 플랫폼 차원의 경쟁으로 바뀌어, 최강자만 살아남는 패권 다툼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노키아, 블랙베리, 휼렛패커드 등이 하루아침에 기존 모델을 포기하고 강자와 제휴를 모색하는 풍경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시킨다. 숱한 군웅이 제 고장을 기반으로 할거하던 시기가 삼국시대를 거쳐 결국 천하가 통일되는 게 패권 다툼의 역사다.

손 연구원은 “IT 분야에서는 신기술과 기술표준을 놓고 특허 분쟁이 잦았다”며 “하지만 대부분 공동 사용이나 사용료 지불 등 타협을 통해 해결돼왔다”고 말했다. 최근의 판매중지 가처분신청이나 거대기업 인수 등은 이례적인 대응이라는 얘기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특허 분쟁이 바뀐 것은 시장의 글로벌화와 혁신 속도의 가속과 관련이 깊다. 아이폰4, 아이패드2, 갤럭시S 등에서 드러나듯 인기 제품이 단기간에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성공과 실패, 추격의 결과도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경쟁의 차원이 대규모화하고 패권 다툼으로 변한 것이다.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한 목적은 특허 확보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도 “안드로이드는 전처럼 개방형으로 유지되고 모토롤라를 별도 사업부로 운영할 것”이라며 인수 목적이 특허권 확보를 통한 안드로이드 생태계 보호임을 분명히 했다. 무전기, 무선호출기, 휴대전화를 처음 시판한 모토롤라는 출원 중인 7천여 건을 포함해 2만4천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구글은 소프트웨어업체로 출발해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검색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하루아침에 모바일기기 제조업체로 변신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구글이 모토롤라 인수를 통해 애플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한 수직적 구조를 완성하려는 야심이 있는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8월18일 ‘구글의 125억달러짜리 도박’이란 기사에서 이번 인수가 구글로 하여금 안드로이드를 모토롤라 기기에 최적화된 서비스로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봤다. 애플이 아이폰4를 통해 화상통화인 페이스타임을 선보인 것처럼, 구글도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직적 통합 서비스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모토롤라는 셋톱박스 기술도 갖고 있어 구글TV 사업을 펼치는 구글에 요긴하다.

구글의 승부수는 ‘도박’?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모건키건의 애널리스트 태비스 매커트는 “구글이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결국 안드로이드 독점상품을 만들려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 업체가 안드로이드를 변형한 제품을 개발해 구글 제품과 경쟁 구도에 놓일 경우, 구글이 확보한 특허를 사용해 ‘통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에선 우려한다.

특히 삼성전자, HTC, LG전자 등 안드로이드폰 제조기업들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 보호 공언에도 구글과 모토롤라의 유착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삼성은 자체 플랫폼인 바다를 육성하겠다고 나섰고, 안드로이드 진영의 이탈로 윈도폰7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제조사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인수 발표가 나온 당일 구글 주식에 대한 ‘매수’ 추천을 ‘매도’로 변경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생태계 보호와 광고를 기반으로 한 사업모델을 유지하려면 모토롤라의 특허권만 확보하고 하드웨어 부문을 다시 매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구본권 기자 한겨레 경제부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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