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수천억 재력가 피살사건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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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4.06.30. 오후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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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수천억 재력가 피살사건 재구성

시의원이 친구시켜 재력가 살해…검거되자 "자살하라"

“요즘에도 살인청부 같은 것이 있나?” 2012년 팽모(44)씨는 친구였던 김형식(44·사진) 서울시 시의원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2년여 뒤, 그들은 청부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철창에 갇혔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9일 채무관계에 있는 수천억원대의 재력가 송모(67)씨를 살해하도록 사주한 혐의(살인교사)로 김 의원과 김 의원의 사주를 받아 송씨를 살해한 팽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치밀한 범행… 실행에 1년 넘게 걸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살인과 범죄 은폐 시도는 치밀했다. 김 의원은 2012년 말 팽씨에게 “빚 독촉 때문에 힘들다”며 “내가 돈을 빌린 사람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피해자는 수천억원대의 재력가인 송씨. 김 의원은 2010∼2011년 여러 차례에 걸쳐 송씨에게서 5억여원을 빌렸다. 송씨는 6·4 지방선거 재선을 준비하던 김 의원에게 돈을 갚으라는 독촉과 함께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압박했다.

궁지에 몰린 김 의원은 7000만원을 빌려줬던 팽씨에게 “채무를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고 살인을 제의했고, 팽씨는 이를 수락했다. 팽씨가 살인을 수락한 데는 김 의원에 대한 ‘우정’도 한몫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팽씨가 평소 김의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신뢰해 김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송씨의 출퇴근 시간 등 동선을 파악한 뒤 범행 장소와 시간, 도주 경로 등을 팽씨에게 치밀하게 알려줬다. 팽씨는 2012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넘게 수십차례에 걸쳐 범행현장을 답사했는데, 현장에 갈 때면 늘 택시를 두번 갈아탄 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길을 찾아 멀리 돌아 걸었다. 이것 역시 김 의원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인 예행연습’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경찰은 “(김 의원과 팽씨가) 범행 모의 후 실행까지 1년이 넘게 걸렸는데, 팽씨가 용기가 없어서 시도를 못했던 것”이라며 “김 의원이 재촉하면 범행장소까지 가기는 했는데, 시도는 못했다. 그게 50∼60차례”라고 전했다.

6·4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3월 기다리다 지친 김 의원은 팽씨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다. 더는 못 기다린다”고 최후통첩을 했고, 팽씨는 이 같은 강요에 따라 3월 3일 다시 강서구 내발산동의 송 씨 소유 건물을 찾았다. 팽씨는 한밤중인 0시40분쯤 송씨와의 격투 끝에 둔기로 송씨의 머리 등을 수십차례 내리쳐 절명케 한 뒤 다시 CCTV를 피해 걸어 현장을 벗어난 뒤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4차례에 걸쳐 택시를 갈아탄 뒤 그는 인천의 한 사우나 근처에 도착, 혈흔이 묻은 옷을 갈아입고 인근 야산에 가서 범행에 사용한 도구와 옷가지 등을 불태워 증거를 없애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김 의원은 범행 후 출국하는 팽씨를 데려다주면서도 인천공항까지 가지 않고 근처에서 내려주는 치밀함을 보였다.

강서구 재력가 송모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팽모(가운데)씨가 중국에서 체포된 후 24일 국내로 압송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김 의원, 살인자 팽씨 잡히자 자살하라 요구”


그러나 완전범죄는 없었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팽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중국 공안과 공조 끝에 중국에서 지난달 팽씨를 붙잡았다. 김 의원은 팽씨가 중국 구치소에서 전화로 체포 사실을 알리자 “네가 한국에 들어오면 난 끝이다. 네 가족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팽씨는 실제 구치소에서 몇차례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그 사이 김 의원은 6·4 지방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경찰은 팽씨와 김 의원의 통화기록, 송씨 사무실에서 발견된 김 의원 명의의 5억여원짜리 차용증, 팽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의원을 살인교사 피의자로 특정하고 팽씨가 국내에 압송된 지난 24일 그를 체포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송씨에게서 돈을 빌리지 않았다. 중국 구치소에 있는 팽씨와 전화통화를 했지만 팽씨가 송씨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뿐”이라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팽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데다 김 의원의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 발견됐기 때문에 혐의는 충분히 입증됐다”며 “다른 관련자가 있는지 추가 수사 후 이들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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