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화


헐뜯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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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뜯음에 대하여
 
남으로 인해서 겪은 억울한 일, 원통 한일을 격은 것을 
제삼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비방과 헐뜯음"이라고  합니다.
 
동쪽을 헐뜯으면  동쪽으로 갈 수 없고
서쪽를  헐뜯으면 서쪽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내가 서운하게  한사람이나 
또는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협조도 얻어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저항은 살려달라는 뜻"
사람들이 나에게 저항하는 경우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상대가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저항하는 것은 나에게 뭔가를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상대를 이해와 용서 사랑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상대의 원을 풀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저항하는 사람에 대하여 역전환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그러한 상대를 우군으로 만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의식상승을 이루려는 사람은
나를  죽이려 했던 적을 설득하여 우군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대인은 사람을 대하면서 그사람의 본질을 꿰뚫어보므로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 이면에는 다 좋은 것이 깃들여 있습니다.
또한 상대가 그렇게 행동하는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그러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의식상승에서는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의식상승에서는 이해를 경지라 말합니다.
 
내가 상대방이 표면적으로 일으키는 현상을 보고
그에 반응하는 것을 휘둘림이라 합니다.
 항상 상대가 나에게 뭔가를 던져 오거든
나도 똑같이 대응해 주기에 앞서서
먼저 "왜 그러한가?"에 대한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내가 상대가 걸어오는 시비에 휘말리면
결국은 나도 상대방과 같아지게 됩니다.
서로 척을 지어 원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대방에 대하여
세상에 큰 해악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웬만한 일에는 항상 상대방을 좋게 말해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쩌면 상대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실은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상대의 반응이란 것은 모두 나의 의식상태와 수준에 따라 항상 달라지게 됩니다.
내가 의식이 낮으면 상대도 낮게 반응하고 내가 의식이 높으면 상대도 높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항상 주체적자아는 나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셔야 합니다.
 
의식상승을 이루려는 빛의 존재들이 항상 명심해야  할 "절대적 대원칙"이 있습니다.
절대 타인에 대하여 "비방과 헐뜯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잘 모를 때는 상대를 헐뜯을 수 도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해도 그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다 적절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상승을 하려는 사람의 경우는 그것이 매우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이 나 자신을 정확히 말해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비방과 헐뜯음은 아직 내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체적 자아인 영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한 모든 행위는 내가 곧 누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한 모든 행위는 내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나일 뿐입니다.
 
대중의 세상에서는 비방과 헐뜯음이 생활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만
빛의 존재들이 걸어가는 길에서는 절대 행해서는 안될 치명적인 행위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겪었다면 상대방을 헐뜯기에 앞서서
그것이 왜 그러한가?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방과 헐뜯듬은 수행력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 나를 칠흑같이 어둡게하는 무명단지같은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함부로 말하고 헐뜯는 행위는 마치 소경이 밤길을 걷는 바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헐뜯는 사람 중에 아무 이유도 없이 헐뜯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상대로부터 무엇인가 당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로부터 당했다라는 생각 때문에 상대에 대하여 헐뜯음이 시작됩니다.
그 본질을 들여다 보면 사실은 당했다라기 보다는 상대가 원을 푸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가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연히 그러한 것이 아니고 전생으로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전생에 원척을 지은 것을 지금의 현실에서 돌려 받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괴롭게 하거든 여러분은 늘 깊이 사려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에게 왜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일까? 하는 생각을 고요히 해보셔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알아지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상대의 시비에 말려들어 싸움을 하는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1. 의식이 너무 낮은 경우
2. 자기 자신이 누구인줄 모른 경우
3.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
4. 시비하는 기운이 많은 경우 - 나는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경우
5. 낡은 기운이 많은 경우
6. 수행력이 부족한 경우 - 평상시 명상이나 사색을 통하여 심신을 안정
7. 그릇이 작은 경우
8. 수가 부족한 경우
9. 사려가 부족하여 경솔한 언행을 하는 경우
10. 기타 
 
일반 적인 대중의 삶에서는 늘 남을 비방하고 헐뜯고 중상모략하는 것이 만연되어 있지만
빛의 존재를 지향하는 삶에서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여 상대방을 나자신으로 보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남을 헐 뜯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지금 자신이 남을 헐뜯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 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러한  헐뜯음은 내가 상대에게 당했다는 하소연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은 모두 나 자신에게 하는 행위인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높이보고 멀리까지 헤아리는 것을 지혜라 합니다.
그러므로 의식상승하는 사람은 
모든 언행에 앞서서 멀리까지 내다보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아무리 상대가 나를 서운하게 하였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함부로 가격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를 서운하게 했던 사람이나
또는 내가 서운하게 했던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내가 헐뜯은 사람에게는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는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내지를 것이 아니라
항상 실리를 보고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헐뜯는 일을 왜하게 되냐면
엄밀히 말해 상대에게 당했다는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누구인지를 깨닫는다면
상대를 헐뜯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곧 나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제 노릇 제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사물이라는 것이 다 때가 되면 멈추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시비도 멈추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서운함을 주었으되 나는 좋은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을 덕이라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악을 주었다면 나는 선을 주어야 합니다.
높의 수로서 대처 함으로 해서 상대가 나에게 감화되어 마음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빛의 존재들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내가 한수 더 높다는 것은 빛의 존재로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경하고 상대방에게 져주고 상대보나 낮추는 사람을 빛의 존재라 합니다.
 
의식상승의 심오한 경지라는 것은 뭐냐면
제삼자게 어떤 누구가를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의 장점과 좋은 점은 전달하고 절대 허물을 전달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일단 내가 누군가의 허물을 제삼자에게 말하고 나면  
그 말을 듣는 제삼자는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로서 누군가에 대한 헐뜯음이 시작되는데 
이 때 헐뜯음을 당하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간에 이간질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헐뜯음을 하게 되면
헐뜯음과 이간질이라는 두 가지 허물을 동시에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별것 아닌듯하나 남에 대한 안좋은 말을 한 사람은
반드시 현실에서 4배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남의 말을 제삼자에게 자꾸 습관적으로 하다보면
나의 운이 하강하고 결국은 하는일마다 잘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시비에 걸려서 남을 헐뜯는 사람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상대에 대한 헐뜯음은 그 헐뜯음을 당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이나 모두 해를 주고
그 기운이 점점 커져서 나에게 4배로 돌아와서 나를 잘 안 되게 만듭니다.
남에 대한 헐뜯음의 기운이 상대를 잘 안 되게 한후에
그 기운이 내게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내가 잘 안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헐뜯음은 내가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재앙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나의 앞길이 막히게 되니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입 밖으로 꺼내기에 앞서서
먼저 아 나에게 지금 왜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일까? 하는
깊은 사려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먼저 상대를 가격을 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생에 원척을 지은 것을 돌려 받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제삼자에게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말한다고 하지만
실은 그것이 바로 비방과 헐뜯음입니다.
 
비방이나 헐뜯는 사람이 따로 있는줄 알지만 상대를 안좋게 말하는 습관이 바로 헐뜯음이요 비방입니다.
그로서 하는 일마다 낭패하는 원인인 것입니다.
 
공부자의 대원칙은 뭐냐면
절대 상대방의 허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데 있습니다.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비방이 되고 헐뜯음이 시작되며
그로서 내가 상대와 단절이 일어나며
결국에는 하는 일마다 잘 안되며 질병과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고요히 앉아서 자신을 돌아 보고 깊이 숙고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상대가 비록 나를 안 좋게 대하거든 그것이 왜그런지 알아야만 합니다.
아무리 추리해도 모르겠거든 틀림없이 전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대한 안 좋은 것을 입밖으로 꺼내기에 앞서서
아 지금 이러한 상황은 무엇을 깨달으라고 주어지는 상황인가?
하는 깊이 있는 생각을 먼저 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해와 용서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식상승이 전에 작성한 참회를 통한 자기 정화의 길에서 밝힌바와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알던 사람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떠올려서
내 마음에서 서운한 마음을 원망하는 마음을 모두 풀어 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가슴에 남지 않을 때까지 풀고 또 풀어서 걸림이 없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크게 보았을 는 시비의 곡직은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먼저 했느냐 내가 먼저 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히 그러한 것이 아니요 알고보면 전생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나와 자주 마주하는 모든 이가 전생부터 헤아릴 수 없는 생애 안에 만나고 헤어지면서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돌고나면서 원을 맺고 풀면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커다란 인연의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큰차원에서 보면 모든 것은 내가 먼저 시작했다고 보면 맞습니다.
대인은 주체적 자아의 영입니다.
이 주체적 자아인 영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했다고 하면 딱맞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을 모두 풀어내야 합니다.
내가 옳으냐 상대가 옳으냐를 따지는 것을 시비라 합니다. 
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먼저 그랬다는 데서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 우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평상시에 늘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을 풀고 상대를 잘되도록 부단히 노력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리 풀려고 해도 잘 안풀립니다.
 
그러므로 공부자는
지금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지극한 이해와 용서 지고한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결국은 상대가 곧 여러분 자신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여러분 자신에 대한 반영일 뿐입니다.
 
심오한 이해와 용서를 통해서 사랑으로 돌아가면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재앙이 물러가고
사고와 질병으로 부터 졸업하며
인간사를 통달하는 길이 열려가게 됩니다.
 
상대가 왜 나를 그토록 서운하게 하는지 그것을 아는데 있습니다.
전생에 나는 정확히 상대보다 10배 정도 더 했습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실지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또 여러분은 아마도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용서 못해
너는 안 돼!
그려면서 이를 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여러분 자신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상대는 곧 여러분 자신이 됩니다.
여러분이 마주한 그들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 됩니다.
상대와 우연히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면 
세상에서 절대 서로 마주 할 수 조차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전생까지 어찌아느냐고 묻겠으나
그것은 우주의 원리이자 이치입니다.
영성이 지고한 사람은 자신이 본래 영이라는 것을 깨달은 존재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영이 들어오는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영이 나가는 것 뿐입니다.
사람은 환생하는 존재입니다. 
영이 사람으로 태어나고 육신을 벗고 다시 태어 나면서 
상대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합니다.
매 생애마다 서로 원척이 맺히고 한이 쌓이게 됩니다. 
인류는 지금 전생으로부터 내려오는 원과 한을 풀어내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전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없던 것이 어디서 그냥 나오는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지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영원히 헐뜯음으로 부터 졸업해야 하며
매일 아침마다 30분이라도 명상을 통해서
늘 여러분 자신을 돌아 보고 빛과 사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절대 풀어야지 그냥 가지고는 새로운 세상으로 못넘어 갑니다.
 
지금 마주한 상대가 곧 여러분 자신이란 것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극진히 돌봐 주므로 인해서 그들이 여러분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 복을 주며 여러분의 앞길을 열리게 해줍니다.
상대방을 절대 헐뜯지 마시고 항상 좋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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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의식상승님의 댓글

어린날의 삶에서 그러하며
아직 초기 공부자의 삶에서 그러하다.

이제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분리해서는 안된다.

대개가 성인과 자신을 분리한다.
이러한 내가 어찌 성인과 같을까?

그리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인은 자신과 다르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것이 대중의 분리의식이다.

언제까지나 범부의 삶속에서 머물면서 성인과 분리 할 것인가?
자신이 성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적어도 의식이 중등을 넘어서면서부터 인식이 달라지는듯하다.

내가 어느 선상에 있든지 의식을 상승하여 성인과 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최대의 습성 남을 안좋게 말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분리는 병이지만 무의식적으로 공부자들이
늘 그렇게 자신과 성인을 분리한다.

그리하여 과거의 습성을 고치지 아니하면서 성인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성인과 나를 분리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일체성이다.

성인이라는 모델을 만들어 유리장식장에 보관하면서 자신의 존재 상태를 성인과 분리한다.
이제는 장식장속의 성인을 꺼내어 내가 곧 성인이요 성인이 나라는 경지를 자각해야 한다.

분리없는 세상 그것은 의식상승을 넘어 인간완성의 세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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